2025. 9. 30

By 토일렛 페이퍼 클럽 플러시🚽 편집장

개인적인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는 수십년간 한 팀을 응원하고 있는 오랜 야구팬입니다. 그래서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 비 소식을 들으면 하나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특히 설레는 마음으로 간 야구장 전광판에 ‘우천 경기 취소’라는 안내가 나오면 내리는 비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서도 비 소식이 반가웠던 적은 별로 없습니다. 비는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물, 반갑지 않은 소식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비’가 내가 마셔야 할 물이자 밥이고, 화장실이자 병원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더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강릉 가뭄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입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단수(斷水)가 시행된 강릉에서 많은 시민들이 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생수를 데워 아기만 겨우 씻기고, 조리할 물을 아끼기 위해 냉동 식품을 먹고, 병원조차 절수를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  무엇보다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페트병에 소변을 본 뒤 물이 나오는 시간에 모아서 버리거나 요강을 구입한다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위생 환경 악화로 인해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도 함께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차이나는 물 접근성, 숨어 있는 불평등
물이 저절로 생겨날 리 없는데, 내리는 비가 곧장 내가 마시고, 쓰는 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제가 불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강릉이 사상 초유의 단수까지 시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강수량 부족, 저수량 부족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도관 등의 시설이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작 수원지인 강원도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평등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2의 강릉’이 될 수 있는 가뭄 취약 시군 37곳을 표시한 전국 지도를 살펴 보면 경기도 연천 1곳을 제외하고 모두 비수도권입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물 접근성의 격차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서울시의 경우 일시적 장애, 노후시설 교체 또는 시설물 진단 등으로 인한 단수는 있었지만 전 지역이 대규모로 단수가 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 관리,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에 많은 인구가 모이고 산업이 발전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많은 인구가 모여 있기 때문에 관련 시설이 잘 유지되고 저수량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자원이 집중된 것입니다.

같은 한국이지만 강원도, 강원도 중에서도 강릉, 강릉 중에서도 저수조가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제한급수가 시행되면서 형평성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강릉만 재난 지역이다”,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  것 같다”, “주택은 단수를 안했다는데 아파트 주민만 희생하는 것 같다”는 목소리입니다. 극심해지는 기후변화를 당장 늦출 수는 없지만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자원의 불평등, 정책의 불균형 문제가 왜 해결되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함께 결정'하는 거버넌스의 중요성
흙먼지만 날리는 동아프리카 지역, 분쟁으로 상하수도시설이 모두 파괴된 난민 캠프에서도 물과 화장실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옥스팜은 어떤 솔루션을 갖고 있을까요? 혁신적인 기술과 첨단 설비에 대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바로 효과적인 거버넌스, 바로 공동체와 함께 의사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안정적인 물 확보를 위해 옥스팜이 하는 질문입니다. (더 읽어보기)
  • 물 관리 방식은 누가 결정하나요? 이러한 결정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나요?
  • 물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역사회 특히 농촌 지역은 발언권을 얻고 있나요? 아니면 도시 거주자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있나요?
  • 빈곤 가정과 여성의 물 접근성을 고려하고 있나요?
  • 기후 정책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두고 있나요?
레바논 데이르 미마스 지역 물 부족 상황에 대해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옥스팜. ⓒ Christian Harb/Oxfam
레바논 데이르 미마스 지역 물 부족 상황에 대해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옥스팜. ⓒ Christian Harb/Oxfam
도로 공사로 파괴된 마을 배수관을 재건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마을 위원회에 전달한 프라밀라(오른쪽). 프라밀라는 옥스팜의 지역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고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Rashik Maharjan/Oxfam
도로 공사로 파괴된 마을 배수관을 재건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마을 위원회에 전달한 프라밀라(오른쪽). 프라밀라는 옥스팜의 지역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고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Rashik Maharjan/Oxfam
전 세계에서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기후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확보할 수  있는 물과 필요한 물의 격차가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크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획기적이고 확실한 하나의 솔루션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크고 작은 다양한 방법이 함께 동원되어야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 부족과 기후위기 문제 역시 일상의 실천에서부터 글로벌 정책에 이르기까지 같은 방향으로 연결될 때 조금씩 해결될 수 있습니다.
소말릴란드 난민캠프에 설치된 식수 시설에서 깨끗한 물을 받고 있는 여성. ⓒ Hassan Siyad/Oxfam
소말릴란드 난민캠프에 설치된 식수 시설에서 깨끗한 물을 받고 있는 여성. ⓒ Hassan Siyad/Oxfam
옥스팜이 물 부족, 물 접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권고하는 것은 지역 사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플랫폼을 마련하고 그들의 현장 적응 경험을 정책 결정 과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물이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끼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강릉 시민들의 경험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언급한 불평등 문제와 불공정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좋아하는 야구 경기가 비로 인해 취소된다고 해도 비가 내 물이고, 밥이자 화장실, 병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조금은 달라진 마음으로 다음 경기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릉에 단비가 내리기를, 그리고 강릉 시민분들이 고통 속에서 전해준 메시지들이 모두에게 단비처럼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우천 경기 취소를 알리는 야구장의 빨간 전광판. 제공: 편집장 플러시🚽
우천 경기 취소를 알리는 야구장의 빨간 전광판. 제공: 편집장 플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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