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6
덴마크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리모어는 사촌 헨리와 처음으로 학교에 함께 가던 날 특별한 비밀을 하나 알려줍니다. 등굣길에 있는 빵집에 하마가 살고 있는데 그 하마의 몸속에 죽음의 마녀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파는 빵에는 독이 들어 있어서 해독하는 법을 아는 사람 만이 그 빵을 먹고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에바는 아침 식탁에서 아빠에게 ‘카스파의 수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프를 먹기 싫다며 안 먹었던 카스파가 5일째 되던 날 결국 굶어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Netflix
ⓒ Netflix
어린 시절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화장실에는 귀신이 살고 있어서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를 물어보는데 어떤 색을 선택해도 결국 귀신이 나타난다는 내용이었죠. 가끔씩 친구들과 모여 어떻게 하면 화장실 귀신에게 잡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나누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리모어와 에바는 영화 ‘폭격’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입니다.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덴마크에서 폭격이 발생해 86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2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실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이들끼리 비밀스럽게 나누는 빵집 마녀의 이야기는 아이들 일상 속에 죽음의 위험이 그만큼 가까이 있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 수프를 안 먹으면 죽는다는 이야기에서도 언제든 음식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불안함과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화장실 귀신 이야기는 왜 생겨난 것일까요? 관련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하수도 보급률은 1980년대 초 겨우 6%에 불과했고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절반을 넘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 설치율도 매우 낮아 1985년 기준 세 집 중 한 집만이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2000년까지도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주택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많은 가정에서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동네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나눠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화장실은 위생적이지 않은 곳,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 곳이었습니다. 특히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자칫 빠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생명이 위험해지는 곳이 화장실이었죠. 어쩌면 아이들이 귀신을 만날까 봐 경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휴지 귀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 모릅니다.
가자지구 알 마와시 지역에 위치한 난민 캠프에 설치된 화장실과 주변을 청소하는 주민들. ⓒ Alef Multimedia Company/Oxfam
가자지구 알 마와시 지역에 위치한 난민 캠프에 설치된 화장실과 주변을 청소하는 주민들. ⓒ Alef Multimedia Company/Oxfam
거의 대부분의 가정과 건물에 수세식 화장실이 갖추어진 현재에는 귀신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위험해질까 봐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화장실은 생명의 위협이 되는 곳, 때로는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전 세계 슬럼 지역 인구의 68%가 공용 화장실에 의존하고 있어 5분 거리의 공용 화장실을 갈 때에도 강간이나 성폭행을 당할 위험이 있고 인도에서는 가정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여성의 성폭력 위험이 최대 2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 깨진 유리병을 손에 들고 간다는 인도 소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아직도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4천1,900만 명이 노천 배변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기후 위기는 화장실을 위험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자 지구에서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옥스팜이 설치한 식수, 위생 시설 32개 중 12개가 파괴되었고 11개가 손상되었습니다. 폐수처리장이 파괴된 후 하수가 도시에 범람했고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 생활하면서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장실 공포는 옛날 옛적 이야기, 괴담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공 지능이 발전하고 우주여행도 가는 시대이지만 더러운 화장실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매일 700명에 달합니다.

유엔은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 세계가 위생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11월 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지정했고 2030년까지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올해 ‘세계 화장실의 날’ 주제는 특별히 ‘화장실, 평화를 위한 공간’입니다. 평화 없이 화장실이 유지될 수 없고, 화장실 없이 평화로운 일상도 불가능합니다.
2024 세계 화장실의 날 로고. ⓒ United Nations
2024 세계 화장실의 날 로고. ⓒ United Nations
영화 ‘폭격’에서 에바가 수프를 남긴 날, 학교가 폭격을 당합니다. 에바는 폭격이 시작되자 학교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 식탁에 남겨진 수프를 허겁지겁 먹습니다. 아빠가 이야기했던 카스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이 수프를 남긴다고 해서 진짜 죽어서는 안되고,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진짜 죽음의 위협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 빵에 독을 탄다는 하마, 아이들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는 화장실 귀신은 옛날 옛적 이야기,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11월 19일을 함께 기념하며 우리 주변의 화장실 문제를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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