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부분의 가정과 건물에 수세식 화장실이 갖추어진 현재에는 귀신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위험해질까 봐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화장실은 생명의 위협이 되는 곳, 때로는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전 세계 슬럼 지역 인구의 68%가 공용 화장실에 의존하고 있어 5분 거리의 공용 화장실을 갈 때에도 강간이나 성폭행을 당할 위험이 있고 인도에서는 가정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여성의 성폭력 위험이 최대 2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 깨진 유리병을 손에 들고 간다는 인도 소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아직도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4천1,900만 명이 노천 배변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기후 위기는 화장실을 위험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자 지구에서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옥스팜이 설치한 식수, 위생 시설 32개 중 12개가 파괴되었고 11개가 손상되었습니다. 폐수처리장이 파괴된 후 하수가 도시에 범람했고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 생활하면서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장실 공포는 옛날 옛적 이야기, 괴담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공 지능이 발전하고 우주여행도 가는 시대이지만 더러운 화장실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매일 700명에 달합니다.
유엔은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 세계가 위생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11월 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지정했고 2030년까지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올해 ‘세계 화장실의 날’ 주제는 특별히 ‘화장실, 평화를 위한 공간’입니다. 평화 없이 화장실이 유지될 수 없고, 화장실 없이 평화로운 일상도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