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9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로 화장실 이슈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동안 화장실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니까 화장실의 공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이번에는 화장실이 있어도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환경과 그 뒤에 숨은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너무 심각하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토일렛 페이퍼 클럽이 쉽게 풀어드릴게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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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가고 싶은데 참았던 기억 있으세요?
특히 학교나 직장에서요. 정해진 시간과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생활을 할 때 내가 원하는 순간에 바로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수업이나 회의가 끝난 뒤에 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만약 화장실을 근무시간 중에 딱 한 번만 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공장 생산라인 전체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면요. 그래서 화장실 갔다는 이유로 사장과 감독관의 눈총을 받아야 한다면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배탈이 나거나 여성의 경우 생리를 하는 기간에는 어떡하죠?
그런데 만약 화장실을 근무시간 중에 딱 한 번만 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공장 생산라인 전체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면요. 그래서 화장실 갔다는 이유로 사장과 감독관의 눈총을 받아야 한다면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배탈이 나거나 여성의 경우 생리를 하는 기간에는 어떡하죠?
있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화장실
옥스팜 미국의 <휴식 없음, No Relief> 보고서는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 시간을 제공하지 않아 화장실을 갈 수 없는 미국 가금류 공장들의 노동환경을 조사해 화장실을 갈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이로 인해 근로자들의 건강이 악화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근로자들은 인터뷰에서,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물 마시는 것을 포기하거나, 심각한 경우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채로 용변을 본다고 답했습니다. 아예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하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공장 내에 화장실이 있지만 생산 라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착용하는 장비들을 벗고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충분한 휴식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라인이 돌아가는 한 쉴 새 없이 작업해야 했고, 화장실을 가려면 나를 대신해 줄 보조 근로자가 필요하지만 공장에서는 비용과 효율을 이유로 근로자를 충분히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화장실이 있음에도 다녀오는 것 자체가 근로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참거나 차라리 기저귀를 입는 쪽을 택하도록 근로자들을 밀어부칩니다.
미국의 한 가금류 공장에서 근로자가 쉼없이 일하고 있다. ⓒ Earl Dotter/Oxfam America
미국의 한 가금류 공장에서 근로자가 쉼없이 일하고 있다. ⓒ Earl Dotter/Oxfam America
직원과 고객으로 나뉘는 화장실 접근성
국내에서도 화장실 권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실태 조사와 개선을 외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보건학, 사회역학 분야 전문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2018년 면세점, 백화점 화장품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그들의 59.8%가 필요할 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매장 인력이 부족하다, 화장실이 멀다는 이유가 가장 흔했는데, 이는 옥스팜 보고서에서 근로자들이 인터뷰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백화점 직원들은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직원용 화장실’은 매장 뒤편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있기 때문에 매장 근로자가 바로 옆에 있는 고객용 화장실을 뒤로하고 저 멀리 있는 직원용 화장실을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리를 오래 비우면 손님 응대 기회를 놓치고 이것이 결국 실적 압박으로 이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화장실에 나의 생활을 맞추어야 할까요, 아니면 나의 생활 어디에서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환경을 바꿔야 할까요?
*출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동아시아 (2023)
*출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동아시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