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11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감이 오시나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을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표현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건 이야기를 듣거나 사진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할 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화장실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언제든 편안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공중화장실조차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는 곳에서 생활하면 화장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결핍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 볼 기회가 거의 없는 거죠.
그런데 직접 그들의 신발을 신어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험난한 신발을요. 국제 물·위생 전문가들이 직접 11개국의 난민 캠프에 방문해 그들이 처한 화장실 문제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옥스팜의 긴급구호 식수위생 프로젝트 ‘Sani Tweaks’ ⓒ Oxfam
옥스팜의 긴급구호 식수위생 프로젝트 ‘Sani Tweaks’ ⓒ Oxfam
가장 험난한 신발
가장 열악한 화장실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바로 갑작스러운 재난과 전쟁을 피해 강제로 살던 집과 지역을 떠나 임시캠프에서 정착해서 살게 된 난민이나 국내 실향민(IDP: Internally displaced person)일 것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에서 화장실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국제 긴급구호 단체나 국가 등으로부터 지원이 결정되고 나서야 그나마 임시로 설치된 공용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없던 화장실이 생겼으니 일단 안심할까요? 아닙니다. 난민들이 겪는 화장실 문제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심각합니다. 난민캠프 생활은 기약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임시적인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임시화장실을 사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어려움들이 발생합니다.
문제 1. 절대적으로 부족한 화장실 수

긴급재난이 발생한 35개 국가의 위생을 분석한 2021년도 한 보고서(the 2021 Emergency Global Wash Gap Analysis)에 따르면, 긴급재난 현장에서 보이는 격차들 중에서 두번째로 심각한 것이 바로 화장실 격차였습니다. 이처럼 긴급재난 상황에서는 화장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정한 난민캠프 수용인원 대비 최소 화장실 수만이라도 맞추기 위해 발 빠른 지원들이 제공되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유입되면 화장실 수가 이용객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화장실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야 하고, 싸움도 일어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 보면 화장실이 더 자주 고장 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의 수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 2. 너무 멀고 깜깜한 화장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불안하다면 얼마나 스트레스일까요? 한 조사에 따르면, 특히 중동 지역에 위치한 난민 캠프에서 여성들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남편이나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갑니다. 그 이유는 바로 화장실이 너무 먼 곳에 있어서 가는 동안 성희롱이나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빛이 없고 깜깜하기 때문에 성폭행 발생 위험이 더욱 증가합니다. 결국 화장실 가는 게 너무 두렵지만 용변은 봐야하기에 노상배변으로 해결하기를 택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밤에 일부러 물을 안 마시고 음식도 적게 먹어서 최대한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도록 만듭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밤에 화장실을 데려가는 것보다 밥과 물을 덜 먹고 참는 편을 택하는 겁니다. 안전한 화장실 부재가 왜 보건과 위생 문제로 이어지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안전한 화장실을 지원할 때 고려해야할 사항들. ⓒ Oxfam
안전한 화장실을 지원할 때 고려해야할 사항들. ⓒ Oxfam
문제 3. 잠글 수 없는 화장실

잠금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화장실은 신체를 노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어떤 곳보다도 잠글 수 있는지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기본적인 존엄 보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문제 1에서 긴급재난 현장에서는 화장실이 부족하고 이용객이 많으면 금방 고장 난다는 내용 기억하시나요? 난민 캠프에서는 잠금 장치가 고장나는 일이 잦습니다. 실제 조사 결과 무려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여성과 소녀의 약 40%가 캠프 내 임시 공용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면 저와 딸이 꼭 한 팀을 이루어서 가요. 화장실 문을 이불로 묶고 한 사람이 잡고 있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용변을 봐요. 그 다음 서로 역할을 바꾸죠. 이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 못 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 이라크 지역 난민 캠프에서 만난 한 여성과의 인터뷰
화장실 이용 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려해야할 사항들. ⓒ Oxfam
화장실 이용 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려해야할 사항들. ⓒ Oxfam
인간이라면 누구나 용변을 보고 처리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것이 난민 캠프라는 특수한 상황일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그 구성원인 국가들이 긴급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제대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출처: Oxfam, 2022. Different Responses, Same Old Shit - how humanitarian agencies implement emergency sanitation in 11 different humanitarian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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